농인에게 '목소리'를 선물하는 그 광고가 문제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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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1-03-29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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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에게 '목소리'를 선물하는 그 광고가 문제적인 이유
<사이보그가 되다>(사계절)는 장애, 과학기술, 사회적 시선과 담론에 대해 글쓴이들이 함께 나눈 고민과 의견을 담은 책이다. 책은 마치 두 사람이 글을 주고받는 것처럼 이루어져 있다. 김원영과 김초엽이 각각 쓴 여섯 개씩의 글이 번갈아 실렸다. 끝부분에는 두 사람의 대담이 자리한다.
김초엽과 김원영은 서로 다른 성별 정체성과 지적 배경, 장애 유형을 지녔다. 김초엽은 보청기를 사용하는 장애인 여성이며 자연과학을 전공한 소설가다. 김원영은 휠체어를 사용하는 남성 장애인이며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다. 한국 사회에서 성장한 시간도 10년 차이가 난다.
장애인을 '비정상'으로 평가하는 사회
'사이보그'는 특별함과 이질감이라는 어감을 동시에 품고 있는 존재다. 특별한 몸이나 능력을 지닌 매력적인 이미지를 갖기도 하지만 결국 인간과 구별되는 대상이다. 현실 사회 속 장애인의 위치를 이보다 날카롭게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기계와 결합한 생명체라는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사이보그다. 안경을 쓰고, 시계를 이용하고, 핸드폰과 컴퓨터에 기대는 유기체. 크고 작은 기계와 도구에 의존해 생활한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다르다. 들뢰즈의 말처럼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차이다. 나의 독특함은 타인과 다름에 있다. 차이가 존재의 정체성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끊임없이 차이를 구별하고 차별의 근거로 삼는다.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자의적 기준을 동원해 규격화한 후 평가하고 우열을 매겨 계층화한다.
푸코의 지적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게 더 깊고 사무치게 적용된다. 그렇지만 '정상성'을 강조하고 '규격화'하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일깨우는 말이기도 하다. 기준과 상황에 따라서 우리는 언제든 '정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장애인을 대상화하고 소외시키는 과학기술 담론
장애인을 위한 과학기술이나 관련 담론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질을 언급하기에는 절대적인 양이 부족한 형편이다. 드물게 등장하는 장애인을 위한 기술을 강조하는 장면마저도 다음 사례처럼 정작 당사자인 장애인을 대상화하고 소외시키기 일쑤다.
장애인을 대상화하고 소외시키는 과학기술 담론은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제거할 뿐 아니라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재생산한다.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역경'으로 설정하고 장애인이라는 정체성 자체를 부정한다. 존엄과 평등의 관점이 아닌 '온정'을 베풀어야 할 대상으로 장애인을 규정짓는다. '따뜻한 기술'에 대한 강조가 흔히 사용되는 수사다. 이런 담론이나 기술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김초엽의 말이 우리 사회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김원영은 책 머리에서 '사이보그'라는 상징을 이용해 책을 쓴 목적을 밝혔다. "우리의 경험과 자기 정체성을 반추해보면서, 장애에 관한 주된 과학기술 담론이 얼마간 어떤 존재들을 더 소외시키거나 그저 소비한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고 했다는 것이다(<사이보그가 되다> 11-12쪽).
김초엽은 "건강하고 독립적인 존재들만의 세계가 아니라 아프고 노화하고 취약한 존재들의 자리가 마련된 시공간 … 서로의 불완전함, 서로의 연약함, 서로의 의존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세계"에 도달하는 상상을 한다고 썼다(<사이보그가 되다> 283쪽). 그곳은 그 어떤 차이도 부끄러움이 되지 않는 세상일 것이다.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해 대단한 기술과 사상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천천히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서, 작은 움직임과 희미한 목소리에도 마음을 기울인다면 완벽해 보이는 세상의 '빈틈'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김초엽과 김원영은 서로 다른 성별 정체성과 지적 배경, 장애 유형을 지녔다. 김초엽은 보청기를 사용하는 장애인 여성이며 자연과학을 전공한 소설가다. 김원영은 휠체어를 사용하는 남성 장애인이며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다. 한국 사회에서 성장한 시간도 10년 차이가 난다.
장애인을 '비정상'으로 평가하는 사회
"사이보그는 기계와 결합한 유기체를 일컫는 용어이지만 현대의 첨단 기술문명이 낳은 새로운 존재의 상징처럼 쓰인다. 김초엽은 보청기를 착용하고 김원영은 휠체어를 타며 생활하듯, 우리는 기계와 결합한 유기체라는 점에서만 보아도 '사이보그적인' 존재일 것이다."
(<사이보그가 되다>, 11쪽)
'사이보그'는 특별함과 이질감이라는 어감을 동시에 품고 있는 존재다. 특별한 몸이나 능력을 지닌 매력적인 이미지를 갖기도 하지만 결국 인간과 구별되는 대상이다. 현실 사회 속 장애인의 위치를 이보다 날카롭게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기계와 결합한 생명체라는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사이보그다. 안경을 쓰고, 시계를 이용하고, 핸드폰과 컴퓨터에 기대는 유기체. 크고 작은 기계와 도구에 의존해 생활한다.
"존재를 언명하는 것은 차이 자체이다."
(들뢰즈, <차이와 반복>, 민음사, 633쪽)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다르다. 들뢰즈의 말처럼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차이다. 나의 독특함은 타인과 다름에 있다. 차이가 존재의 정체성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끊임없이 차이를 구별하고 차별의 근거로 삼는다.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자의적 기준을 동원해 규격화한 후 평가하고 우열을 매겨 계층화한다.
"생체-권력의 … 결과는 … 규격의 작용이 점점 더 큰 중요성을 띠게 된 점이다. … 생명을 떠맡는 것이 임무인 권력은 … 살아 있는 사람을 가치와 유용성의 영역에 배치하는 것이다. 그러한 권력은 … 규정짓고 측정하며 평가할 뿐만 아니라 계층화하게 되어 있는 것이고, … 규격을 중심으로 배치를 실행한다."
(푸코, <성의 역사 1-앎의 의지>, 나남, 161쪽)
푸코의 지적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게 더 깊고 사무치게 적용된다. 그렇지만 '정상성'을 강조하고 '규격화'하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일깨우는 말이기도 하다. 기준과 상황에 따라서 우리는 언제든 '정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어떤 시기에는 정상성의 범주에서 밀려난 존재가 된다. 단지 그것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 독립적이고 유능한 이상적 인간과 달리, 현실의 우리는 누구도 취약함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사이보그가 되다>, 40쪽)
장애인을 대상화하고 소외시키는 과학기술 담론
장애인을 위한 과학기술이나 관련 담론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질을 언급하기에는 절대적인 양이 부족한 형편이다. 드물게 등장하는 장애인을 위한 기술을 강조하는 장면마저도 다음 사례처럼 정작 당사자인 장애인을 대상화하고 소외시키기 일쑤다.
"2020년 3월 26일, KT는 '제 이름은 김소희입니다-마음을 담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공개했다. KT가 기가지니 AI 음성 합성 기술을 적용하여 농인인 김씨에게 '목소리'를 선물하는 과정을 담은 것이다. … 기가지니는 수어를 쓰는 김씨에게 목소리를 '선물'했다. 그런데 이 목소리가 향하는 대상은 청인들이다. 정작 농인인 김씨나 나와 같은 청각장애인들은 기가지니가 만든 목소리를 명확하게 들을 수 없다. 그러니까 기가지니가 김씨에게 선물한 '목소리'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청인들이 청각장애인에게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다."
(<사이보그가 되다>, 66-67쪽)
장애인을 대상화하고 소외시키는 과학기술 담론은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제거할 뿐 아니라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재생산한다.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역경'으로 설정하고 장애인이라는 정체성 자체를 부정한다. 존엄과 평등의 관점이 아닌 '온정'을 베풀어야 할 대상으로 장애인을 규정짓는다. '따뜻한 기술'에 대한 강조가 흔히 사용되는 수사다. 이런 담론이나 기술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김초엽의 말이 우리 사회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장애 당사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기술이든, 기업 홍보에 치우쳐 정작 당사자의 필요를 반영하지 못한 기술이든 지나치게 자선-시혜-온정의 시선으로 뭉뚱그려지는 경향이 있어요. … 한국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시혜와 온정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닌가, 장애인을 위해 갖춰야 할 접근성을 사회 정의의 실현으로 보는 관점 자체가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어요. 저 나름대로 정리한 입장은, …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기본적으로는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에요."
(<사이보그가 되다>, 321쪽)
김원영은 책 머리에서 '사이보그'라는 상징을 이용해 책을 쓴 목적을 밝혔다. "우리의 경험과 자기 정체성을 반추해보면서, 장애에 관한 주된 과학기술 담론이 얼마간 어떤 존재들을 더 소외시키거나 그저 소비한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고 했다는 것이다(<사이보그가 되다> 11-12쪽).
김초엽은 "건강하고 독립적인 존재들만의 세계가 아니라 아프고 노화하고 취약한 존재들의 자리가 마련된 시공간 … 서로의 불완전함, 서로의 연약함, 서로의 의존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세계"에 도달하는 상상을 한다고 썼다(<사이보그가 되다> 283쪽). 그곳은 그 어떤 차이도 부끄러움이 되지 않는 세상일 것이다.
"지금 이곳의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고통과 장벽을 해결하는 일을 '언젠가' 기술이 발전할 미래로 자꾸만 유예한다.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수어통역을 실현하는 데 최첨단의 놀라운 기술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사이보그가 되다>, 87쪽)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해 대단한 기술과 사상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천천히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서, 작은 움직임과 희미한 목소리에도 마음을 기울인다면 완벽해 보이는 세상의 '빈틈'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불완전함은 때로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사이보그가 되다>, 358-3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