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학교에 수어 가능 교사가 없다는 것은 농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특수교육의 방향과 결부된 문제인 만큼 교육부와 학교, 학부모님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해결할 수 있다.”
윤병천 나사렛대학교 수어통역교육학과 교수는 지난달 25일 한국일보와 만나 “수어는 농인들의 모국어”라며 “청각정보가 차단된 농인들은 시각정보 습득이 청인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말했다. 수어에선 손짓뿐 아니라 얼굴 표정도 중요하다. 단어마다 달라지는 표정과 손짓까지 종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수어라는 것이다. 윤 교수는 “농인들은 수어로 배울 때 개념을 훨씬 빨리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90년대 26개교였던 전국의 농학교는 현재 절반 정도로 줄었다. 인공와우(달팽이관) 수술과 보청기 보급이 늘었기 때문이다. 반면 남아 있는 농학교에는 농학생뿐 아니라 발달장애 학생 등 다른 장애 학생들이 늘었다. 대학 특수교육 전공도 시각ㆍ발달 장애 교육에 무게가 실렸다. 윤 교수는 “2013년 기준으로 전국 대학 특수교육학과에서 수어가 필수교과인 곳은 한 곳 정도”라며 “농학교에서 수어로 수업할 수 있는 교사는 전체의 10%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 교육을 지향하는 한국 특수교육의 방향이 농학생 교육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농학생은 공통교과과정 대상이지만 일반학교 진도를 아예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와, 농학교가 부족해 발달장애 학교로 갔지만 일상 생활 중심의 교육 과정으로 인해 학습 진도가 맞지 않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모두 발생한다. 윤 교수는 “이 경우 농학생들은 교사는 물론 반 친구들과 소통이 되지 않아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며 “농학교 선생님들도 갑자기 준비 없이 발달장애 학교로 발령나는 경우가 있어 학생의 특수성에 맞춘 교육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농인 학생 부모도 자녀가 음성언어에 익숙해지길 바란다. 윤 교수는 “거금을 들여 농인 자녀에게 인공와우 수술을 시킨 부모들은 자녀가 구화(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고 말을 이해하고 말하기)를 배우길 바라지, 학교에서 수어 교육을 받는 걸 원치 않는다”며 “구화를 배우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학의 특수교육학 전공분야에서도 ‘수어 마인드’보다는 ‘치료 마인드’가 강하다고 윤 교수는 지적했다. 언어청각장애교육 교수진을 뽑을 때에도 언어치료 전문가가 교수로 임용되는 경우가 많다. 윤 교수는 “농학교 현장에서는 교사들이 수어를 모르고, 대학에서는 청각장애를 치료 대상으로 보다 보니 농학생의 수어 학습권이 계속해서 침해받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농학교에서 오래 근무한 교사를 다른 장애 영역의 특수학교로 순환 배치하는 것은 교육적 손실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수어를 학습할 수 있는 환경으로 농학교를 재구조화해 교육과정에 수어 교과의 정규 교과목 편성과 수어 교재 개발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교육부의 행정적ㆍ재정적 지원을 포함한 다각도의 수어 교육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