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정책 ‘장벽’ 끈질김으로 맞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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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강원도수어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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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19-12-0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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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abnews.kr/1O1n
장애인정책 ‘장벽’ 끈질김으로 맞짱
‘2019 한국장애인인권상’ 수상 장애벽허물기
“수어법 한계 여전…무소의 뿔처럼 나아갈 것”
기자들은 현장 취재와 더불어, 수많은 단체, 기관들이 보내오는 보도자료를 참고해 기사를 작성하기도 합니다. 물론 정부부처의 새로운 장애인 정책 홍보, 전국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 등의 자료가 많지만, 기자의 관점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자료는 장애 이슈에 대한 단체들의 성명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부의 정책이 발표되면, 장애계의 따끈한 입장이 가장 궁금하기 때문인데요.
아니나 다를까, 항상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면 ‘딩동’ 메일을 보내오는 단체. 올해만 30여 개의 성명서를 작성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할지라도 끊임없이 정부에 쓴소리를 내는, 그 이름도 어쩌면 생소한 단체.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김철환 활동가(54세,남)를 만났습니다.
줄여서 ‘장애벽허물기’는 3일 ‘2019 한국장애인인권상 인권실천부문’의 수상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생각도 못 했어요. 자격도 안 되는 거 같은데…주변에 고생하는 단체가 많은데,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어요.”
■‘도가니사건’ 이후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앞장’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의 전신은 장애인의 문화권, 교육권 등을 중점적으로 활동해왔던 장애인정보문화누리로, 2008년 12월 설립 이후 방송권, 문화접근권, 영화관람권 등을 위해 싸워왔다.
특히 농아인의 교육권 및 수화언어권 공대위 연대 단체를 조직하고 그 사무국을 맡아 수화를 한국어와 동등한 언어로 인정하는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운동을 시작하고 법안 제정에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운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2017년 말 해산한 후, 다시 이듬해인 2 0 18 년 3월,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이 탄생한 것.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활동 포함 장애벽허물기의 가장 큰 성과는 2016년 2월 3일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을 끌어냈다는 점이다. 2011년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수화언어권 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5년여간 정부를 끊임없이 압박해 대한민국의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들의 고유한 언어임을 법적으로 입증했다.
“도가니 사건이 났을 때, 대부분 시설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어요. 물론 중요한 문제이지만, 우리는 그 밑바닥에는 소통의 문제가 있다고 봤죠. 학교 안에서의 소통, 그리고 내부와 외부의 소통 단절. 그 부분이 사건을 키웠다고 봅니다. 근본을 파보니, ‘수어가 공식언어가 아니구나’. 그래서 수화언어권에 대한 부분을 짚은 거죠.”
■“청와대 수어통역 제공, 의지의 문제”
2012년 대선 당시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처음으로 공약하며 불이 지펴진 수화언어법 제정은 조금씩 정부와 정치권을 움직였고, 2015년 12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가슴 졸이며 방청석에서 본회의를 지켜봤던 농인들은 눈물까지 흘렸다고. 그렇게 2016년 2월 3일 시행 이후 3년이 지났지만, 냉정히 피부로 느껴지는 수준은 아니다.
“법 자체가 문체부 소관이라서, 다른 주무부처와의 연계가 약해요. 공공기관에서 수어로 민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고, 대중들이 쉽게 수어를 접근할 수 있도록 선택 교과과목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법의 한계인 거죠.”
장애벽허물기는 한국수어법의 올바른 이행을 위해 청와대 및 정부부처, 국회 등의 주요 내용에 수어 통역 제공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앞장서 지난 9월 4일부터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시범적으로 수어통역사를 배치하고 있으며, 7월에는 국회 청원도 진행했다. 그와 더불어 의무적으로 국회에서 수어통역이 정착되도록 국회법 개정안도 발의한 상태다.
“추혜선 의원께서 목소리를 많이 내주셔서 국회 사무처에서도 조금씩 수어통역을 늘리려고 하는 게 보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중계에서도 수어통역과 문제가 일부 제공되고 있고요. 문제는 20대 국회가 끝나가는데, 다음 21대 국회에서 이런 의지를 가진 분이 나올까 하는 걱정이죠.”
반면, 청와대 수어통역 제공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장애벽허물기의 잇따른 진정, 민원에도 모두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로 넘겨 구체적인 답변을 받지 못한 상황인 것.
“물론 청와대의 고민은 이해합니다. 방송국 영상 전송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가능해요. 한국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하다는, 우리나라에는 언어가 두 개라는 것을 국민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는 행정부 수반인 청와대가 보여줘야 합니다. 문재인정부가 얘기하는 ‘사람이 먼저다’, 당연히 수용해야 하는 문제 아닐까요?”
■“등급제 폐지, 청각장애인 목소리 없어 아쉽다”
올해 장애인계의 핫이슈는 31년 만에 시행된 ‘장애등급제 폐지’였다. 진보적 운동단체, 시각장애인계 등 장애계 내부에서는 등급제 폐지와 관련, 거리로 나와 유형별 종합조사표를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농인을 포함한 청각장애인계의 주장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김철환 활동가는 이 점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장애등급제 폐지 정책에서 청각장애인들의 정책이 소외된 게 사실이에요. 청각장애인들은 정보 접근, 의사소통의 문제가 큰데 현재 정책은 이동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거든요.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활동 지원 같은 형태로, 일상생활에서 수어통역을 받을 수 있는 신규서비스 개발이 필요해요. 청각장애인들의 복지정책, 인권이 어떻게 가느냐는 당사자의 움직임에 달려있습니다.”
당사자가 아님에도 끊임없이 청각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김철환 활동가. 혹자는 “당사자도 아닌데, 왜 나서냐”는 부정적 시선으로 농사회에서 방황하기도 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란 질문이 절로 나온다.
“누군가는 문제를 제기해야 해요. 모든 사람의 가치는 중요한데, 그 중요한 가치가 훼손되면 ‘하지 마라’라고 말을 해야 하거든요.”
■우연히 만난 농사회, “무소의 뿔처럼”
1990년대 중반 우연히 점자와 수어를 배웠다는 김철환 활동가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대인공포증이 매우 심했단다. 의사소통 단절로 방황하던 농인들을 길거리에서 만나 밤이 새도록 수어로 대화하며, 그렇게 자연스럽게 농사회로 스며들었다.
“당시 청각장애인들은 집안에서 가족이 아닌, 손님이었어요. 깊은 대화가 불가능하니까. 밖에서 나돌게 된 거죠. 그렇게 그분들과 만나서 공감대를 얻은 거죠. 아픔이 없었으면 쉽진 않았을 텐데, 그들과 만나며 ‘나만의 문제가 아니구나’를 느꼈죠.”
특히 그는 1996년 11월 횡령, 임금착취, 폭력 등에 시달리던 에바다농아학교 학생들의 비리재단 퇴진을 위한 운동 중 경찰들의 강경 대응에 화가나 한국농아인협회에 공식적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외쳤고, 당시 서울 서초동에 있는 협회 건물 지하에 학생 30여명이 숙식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인연으로 한국농아인협회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직원이 아닌, 활동가로서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조직이 크다 보면, 아무래도 정치도 해야 하고,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있어요.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에 작은 단체를 만들었죠.”
“그래서 지금은 행복하세요?”라고 묻자, “자유롭고 행복하지만, 돈 문제가 커요. 활동을 많이 하고 싶어도 인력도 돈도 없어서.” 현실적인 답이 돌아왔다. 현재 장애벽허물기의 상근 활동가는 김철환 활동가 단 한 명뿐이다.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지 않아 정부의 공식 테이블에도 앉지 못하고, 보조금도 한 푼도 없다.
어느덧 중년이 된 그에게는 고등학교 2.3학년의 딸, 아들이 있지만, 단체 재정의 문제로 용돈도, 학원도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고.
“집사람은 평범한 알바(아르바이트) 주부이고, 아이들 용돈도 제대로 못 주고. 막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싫어하는 게 보여요. 가족들이 고생이죠. 개인적인 빚도 많고.” 그래서 이날 받은 인권상 1000만 원의 상금은 밀린 급여와 운영비로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운영 어려움에도 인권운동만큼은 무소의 뿔처럼 꿋꿋이 나아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저희가 어렵지만, 지금 하는 인권운동은 놓지 않을 거예요. 새해에는 총선도 있으니 국회 내에서 통역이 일상화될 수 있도록, 등급제 폐지와 관련 신규서비스 개발, 막말 발언에 대한 국회 내 제도적 장치 등을 요구할 겁니다. 외롭지만, 많은 분이 우리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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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lovely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