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코다입니다]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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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강원도수어문화원
- 이메일 : kwdeaf@daum.net
- 작성일 : 19-11-2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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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정상성이라는 허구의 안팎을 멋지게 횡단하고 돌파해낸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당당하게!”
_ 정희진 (여성주의·평화 연구자)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의 경계인,
‘코다’의 언어로 전하는 낯선 삶의 이야기
엄마는 스스로를 농문화에 속한 농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장애’라고 불렀고 때로는 ‘병 신’, ‘귀머거리’라고 부르며 비웃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내가 바라본 엄마, 아빠의 세상은 너무나 반짝였지만 그것을 설명해내기에는 두 세상의 언어가 확연히 달랐다. 시각을 기반으로 한 수화언어와 청각을 기반으로 한 음성언어 사이에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뿐만 아니라, 차별과 편견의 벽이 존재했다. 그래서 그 둘을 오가는 일은 고단했고 종종 외로웠다. - ‘코다라는 언어를 갖다’(이길보라), 122쪽
여기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가 있다. 농인(聾人)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聽人) 자녀. 수어(手語)로 옹알이를 하고 소리보다 먼저 손과 표정을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는 사람. 온통 소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부모의 귀가 되고 입이 되는 통역사.
식당에서 음식을 시킬 때도, 부동산에서 집을 계약할 때도, 부모님이 아파서 병원에 갈 때도, 학교에서 학부모 면담을 할 때도, 코다는 부모의 손말을 세상의 입말로 전하며 농세계와 청세계를 연결했다. 그렇게 두 세계에서 살며 두 세계를 넘나들었지만, 두 세계는 언어도 문화도 너무 달랐다. 더구나 ‘다수’의 청인은 ‘소수’의 농인을 그저 ‘결함’이자 ‘비정상’으로 여겼기에 두 세계를 가로지르는 일은 편견의 턱마저 넘어야 했다. 농세계와 청세계, 그 경계에서 어디에도 완전히 동화될 수 없던 코다는 물었다. 나는 어느 세계에 속할까? 나는 누구일까?
이 책은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의 경계인 코다가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전하는 삶의 이야기다. 네 명의 필자들은 코다의 시선으로 코다의 다양한 삶을 이야기하면서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더 나아가 그들을 향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경계인’으로서 살아온 그들은 자신의 언어와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낯선 세상을 밝히고 우리 안의 편견을 보여주며 우리와 대화를 시도한다.
《우리는 코다입니다》는 한국 사회, 젊은 여성, 코다의 역사를 다룬다. 농인 부모 사이에서 청인으로 태어난 코다의 삶을 전하는 필자들은 정상성이라는 허구의 안팎을 멋지게 횡단하고 돌파해낸다. 이는 ‘농과 청을 다 아는 양날의 검’을 쥔 이들이, 기존의 세계를 상대화함으로써 칼날 대신 칼자루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당당하게! 보편의 반대는 특수가 아니라 차이이며, 차이를 둘러싼 논쟁은 현대 철학의 핵심이다. 이들의 삶은 차이(差異)를 차이(差移/차연差延)로 이동시킨다. 엄청난 실천과 이론의 장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책의 이야기에 몸을 맡기면서 함께 여행하며 행복했다.
- 정희진 (여성주의·평화 연구자)
‘코다’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의 이야기로
경계를 허물고 공감을 나누는 특별한 에세이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이길보라, 수어 통역사이자 언어학 연구자인 이현화, 장애인 인권 활동가이자 여성학 연구자인 황지성은 우리나라 유일의 코다 단체인 ‘코다 코리아(CODA Korea)’에서 만났다. 세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낯선 존재인 ‘코다’를 드러내기 위해 책을 기획했고, 코다 이야기에 다양성과 깊이를 더하고자 한국계 미국인 코다 수경 이삭슨(Su Kyung Isakson)에게 글을 요청했다. 그 결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개성 있는 코다들의 이야기가 모였다.
필자들은 이 책에서 ‘코다’의 정체성을 말하면서도 그 안의 다양성을 드러낸다. 부모에게서 수어를 배운 코다,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부모 아래서 자란 코다, 퀴어한 코다, 한국계 미국인 코다……. 그리고 자신들의 경험을 확장해 코다와 같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코다들은 경계를 허물고 공감을 나누며 장애인, 여성, 퀴어, 이민자를 비롯한 사회적·언어적 소수자들에게 다가간다. 농인을 위한 새로운 《한국수어사전》 편찬의 여정, 장애 여성의 성적 권리를 지지하는 운동, 소수자의 시선을 담은 영화 제작기, 이민 가정의 소수 언어에 대한 이해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타인과 연결된다. 코다를 말함으로써 코다처럼 다른 뿌리와 결을 지닌 자들을 긍정한다.
코다는 경계에 서 있는 존재다. 농문화와 청문화, 수화언어와 음성언어 사이에 서 있는 존재. 그래서 이 책은 코다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이 코다, 더 나아가 다양성과 고유성, 교차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나의 경험은 이것과 달라, 하고 말하는 코다들이 더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다양성은 코다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다.
또한 이 책의 부제에 쓰인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가 단순히 소리가 있고 없고로만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내게 있어 엄마, 아빠의 세계는 그 무엇보다 시끄럽고 활발하고 활기찬 곳이고 동시에 ‘침묵’이기도 하다. 나는 그 드넓은 침묵 속에서 그 누구보다 반짝이는 이들을 만났다. 이 책이 침묵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 사이에 서 있는 이들을 발견하고 명명하고 잇고 확장하기를 바란다. - ‘프롤로그’(이길보라), 16쪽
내용 구성
너의 이야기를 우리가 듣고 있다고 _ 이현화
이현화는 어린 시절부터 농부모와 청인들을 연결해야 했다. 사소하게는 음식을 시켜 먹는 일부터 크게는 법원에서 진술하는 일까지. 성실했지만 안정적이지 못했던 부모님을 대신해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밀린 정수기 점검비 탓에 모욕적인 소리를 듣는 일도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수어가 싫었고 ‘보통’의 청인이 되길 간절히 바랐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거짓된 가면 뒤에 숨는 것 같아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숙명 같은 수어 통역을 직업으로 삼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 덕에 ‘코다’를 만나게 되었다. 자신이 ‘코다’임을 깨닫자 그의 가슴 깊숙이 묵혀 있던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들은 다른 코다들과 이어졌고 그렇게 ‘코다 코리아’가 시작되었다.
나는 많이 우는 아이였는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엄마는 친구에게 보청기를 빌려 왔다. 부모님은 그 보청기를 서로 번갈아 끼고 나를 돌보았다. 보청기의 출력음을 가장 크게 해놓아도 잠이 들면 소용이 없어 엄마는 나의 작은 발과 자신의 손을 실로 묶고 잠에 들었다. 내가 움직이면 실을 통해 그 움직임이 엄마에게 전해져 나를 한 번 살펴보고 다시 잠들었다. 행여나 알지 못할 이유로 아이가 죽지는 않을까 엄마는 나를 보고 또 보며 길렀다. - ‘기억의 조각을 줍다’, 23~24쪽
부모님이 가정 통신문을 읽고 적절한 준비를 해주는 것은 쉽지 않았다. 농인에게 한국어는 외국어와 같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제대로 써볼 기회조차 없는 언어를 학교 교육만으로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때로는 가정 통신문의 내용이 너무 어려워 부모님도 나도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는 채로 답변을 써 보내야 했지만 별 수 없었다. 이때 내게는 준비된 몇 가지 답변이 있었다. ‘현화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어디에 갖다 써도 어색하지 않을 저 답변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될 일이었다. - ‘보호받는 보호자’, 31, 32쪽
어느새 ‘코다’는 나와 분리할 수 없는 말이 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 입과 손은 더 자주 코다를 말하고 있었다. ‘한국농아인협회’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여느 때처럼 코다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코다가 모일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그 기회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 그리고 그곳에서 코다들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를 지지하고 있었다. 너의 이야기를 우리가 듣고 있다고, 네가 말하고 있는 그 언어를,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우리의 언어를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나는 너를 그 자체로 사랑한다고. …… 그렇게 ‘코다 코리아’가 시작됐다. - ‘그곳에 코다가 있었다’, 69~70, 71쪽
어떤 (수어) 사전을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던 그때, 무거운 국어대사전을 뒤져 가며 단어를 찾아보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셈이 빨라 똑똑하다는 말도 제법 들은 엄마에게 한국어 문장은 떨쳐버릴 수 없는 콤플렉스였다.
한국수어를 배우고 싶지만 그 의미를 찾을 방법이 없어 답답해하던 많은 수어 학습자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들이 사전에서 본 수어 단어를 농인 앞에서 사용해도 그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사용이 적절하지 않아 농인들과 통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했다. 결국 수어 학습자들도 수어 사전과 멀어지고 있었다. 두 세계를 오가며 이런 현상을 오래 지켜봐 온 나는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한국어를, 수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한국수어를 찾아볼 수 있는 사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한국수어-한국어 사전, 한국어-한국수어 사전 편찬을 꿈꾸고 있다. - ‘보이는 언어, 수어’, 110, 111쪽
침묵의 세계를 읽어내는 _ 이길보라
이길보라는 농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타고난 이야기꾼 기질을 발휘해 자신이 살아온 삶의 순간순간을 풀어 간다. 그는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와 〈기억의 전쟁〉을 제작한 계기, ‘코다 코리아’의 활동 과정, 결혼과 유학 문제 등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특히 농부모의 침묵의 세계가 지닌 왁자지껄함과 활기를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침묵’이 단순히 소리 없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짝이는 농세계의 환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미국에서 놀라운 농세계의 가능성을 확인한 나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찬란하게 반짝이는 부모와 나의 세상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 세계를 만나보지 못한 청인들을 초대하고 환영하고 싶었다. 내가 보아 온 엄마, 아빠의 세계는 결여의 의미가 담긴 ‘장애’가 아니라 또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그저 또 다른 형태의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와 나, 동생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현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에세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담았다. - ‘코다라는 언어를 갖다’, 130~131쪽
나는 그와 함께 지내고 살면서 그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는데 혹시 그의 가족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와 함께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그의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두 팔을 올려 손을 움직였다.
“같다.”
한국수어이자 일본수어였다. 어머니는 요새 한국수어를 배우고 있는데 일본수어와 비슷한 것이 많아 참 신기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학교 선생인 당신이 가르친 학생들 중에도 코다가 있었는데, 그때는 ‘코다’라는 단어를 몰랐다며 이제는 더 주의 깊게 보게 된다고 했다.
고마웠다. 그의 어머니가 손을 움직여 수어를 한 순간,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음이 어쩌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생각해보면 이게 ‘기본’인데. 상대방을 이해하고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관계 맺음의 가장 기본적 태도인데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던 걸까. -- ‘같음과 다름’, 171~172쪽
‘소수’와 ‘다수’로 경계를 만드는 것이 아닌, 침묵의 세계를 새롭게 읽어내고 재해석함으로써 경계를 지우는 일. 모든 이에게는 자신만의 언어가 있음을 발견하고 명명하는 일. 그것이 여태까지 내가 해왔고, 또 앞으로 해 나갈 일일 것이다. 농부모가 물려준 그 큰 유산으로 말이다. - ‘침묵의 세계를 읽어내는’, 222~223쪽
나는 지워진 이들의 유물이자 흔적입니다 _ 황지성
황지성은 농인 아버지와 지체 장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코다다. 수어를 배우지 못해 ‘홈사인(home sign, 주로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비공식적 기호)’을 사용하는 아버지와 오랫동안 의사소통이 단절된 채 살아왔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온 날이면 행복한 ‘데프 보이스(deaf vocie, 농인들의 발성)’를 내며 회사에서 받은 ‘우수 근로자 표창장’을 자식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징표였을까? 그러나 아버지의 소리는 언어가 되지 못했고 가족 안에서도 소외되었다. 그러다 황지성은 장애인 인권 운동을 접하고 코다를 만나면서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 너머에 ‘드넓은 침묵’의 세계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더는 아버지를 자식에게까지 하찮은 존재가 되게 하지는 말자고. 그리고 아버지처럼 언어가 없는 자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겠다고.
(‘도가니’ 재판장에서) 농인 증인들은 통역과 보조를 맞추어 질문에 따라 차분히 수어로 증언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데프 보이스를 내뱉으며 질문 내용이나 통역에 아랑곳없이 빠른 속도로 수어를 했다. 수어를 전혀 모르는 나는 그들이 전달하려는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 데프 보이스가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화가 난다. 답답하다. 억울하다. 그것은 내가 평생 익숙하게 들어 온 아버지의 데프 보이스였다.
광주 법원 방청석에 앉아 전혀 낯선 농인들에게서 뜻밖에 나의 아버지의 데프 보이스와 똑같은 소리를 듣게 된 순간 나는 어딘가로 침잠해야 했다. 아버지의 데프 보이스를 누가 들을까 나는 늘 불안해하고 수치스러워했다. …… 가족들과 나의 세계에서 아버지의 데프 보이스는 결코 언어가 될 수 없고 소통될 수 없는 그냥 ‘잡음’에 불과했다. 나의 세계와 그 법정의 세계는 그렇게 일치했던 것이다. - 〈도가니〉의 법정에서, 270~271, 272쪽
하지만 나는 분명히 느끼고 있다. 소리 없는 세계, 그 반짝임을 뒤늦게나마 인식하면서 내 몸은 변화했고 더는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어질러진 파편들을 하나하나 모아 나가는 앞으로의 일이 나의 아버지, 그리고 다른 농인들과 코다들, 그들의 침묵되고 아직 이야기되지 못한 삶들을 연결하면서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 ‘흩어진 파편을 모아, 잃어버린 흔적을 모아’, 287쪽
2000년대 중반 무렵 ‘(장애여성)공감’ 활동을 시작하면서 내가 제일 먼저 관심을 가진 문제는 장애 여성의 성과 재생산이다. …… 활동 초기에 나는 한국 형법이 여성의 낙태를 명백히 죄라고 규제하면서도 ‘우생학적’ 이유(태아와 부모 모두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를 비롯해 몇 가지 경우를 예외로 두는 데 의문을 품었다. 모든 여성에게 명목상이나마 낙태는 금지인데, 왜 어떤 이들에게는 반대로 허용하겠다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장애인 부모의 재생산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나의 출생 자체를 의심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인가. - ‘깨닫게 된 것들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334~335쪽
사이의 세계에서 완전한 ‘나’ _ 수경 이삭슨
수경 이삭슨은 한국 농인 어머니와 미국 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코다다. 그는 이민자인 어머니에게서는 한국수어를 배우고 미국인으로서 영어와 미국수어를 익히며 교차적 정체성을 형성했다. 인종, 언어, 문화의 다양성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스스로를 ‘사이에’ 낀 존재로 여기기도 했지만, 코다로서 자신을 정체화하며 ‘완전한’ 자신을 발견한다. 현재 수어 통역사이자 수어통역학 교수로서 활동하는 수경은 이 글에서 농사회의 전문가이자 지지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풀어낸다.
더는 나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면서 줄곧 내가 완전한 청인도, 완전히 농인도, 완전한 미국인도, 완전한 한국인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스스로를 혼성적이며, 무언가 새롭고, 그 자체로 완전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나는 문화와 언어를 횡단하는 경험을 통해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나는 농문화 안에서 풍요롭다. 한국 문화 안에서 풍요롭다. 나는 ‘혼종(hybrid)’이다. 더는 나 자신이 ‘사이에’ 끼어 살고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의 세계에 거주하고 있다. 나는 한국계 미국인 코다다. 나는 완전하다. -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388쪽
지은이
이길보라
영화감독이자 작가.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인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다. 영화 대표작으로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 〈기억의 전쟁〉(2018)이 있으며, 특히 코다의 시선으로 농부모의 이야기를 담은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길은 학교다》(2009), 동명의 영화를 책으로 펴낸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5)가 있다.
이현화
수어 통역사이자 언어학 연구자. 청사회와 농사회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해온, 그러나 버거웠던 수어 통역을 직업으로 삼아 국가 공인 수어 통역사가 되었다. 자신의 몸에 녹아 있는 수어와 농문화를 바탕으로 삼아 언어학 박사 과정에서 수어의 언어학적 측면을 연구하고, 국립국어원 특수언어진흥과에서 《한국수어사전》을 편찬하고 있다.
황지성
장애인 인권 활동가이자 여성학 연구자. 활동의 시작은 부모의 장애에서 비롯했으나, 세상과 불화하는 모든 ‘타자들’의 삶을 만나고 연구하고 글을 쓰는 일로 관심을 확장하고 있다. ‘장애여성공감’,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여성학 박사 과정에서 페미니즘과 장애학을 넘나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공저로 《배틀그라운드》(2018), 공역한 책으로 《거부당한 몸》(201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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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이삭슨(Su Kyung Isakson)
수어 통역사이자 미국 볼티모어 카운티 커뮤니티 컬리지 수어통역학 교수. 한국 농인 어머니와 미국 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코다다. 저자들의 요청으로 이 책에 코다로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실었다.
차 례
추천의 글 _ 정희진
프롤로그 _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 사이에 서서
너의 이야기를
우리가 듣고 있다고 _ 이현화
기억의 조각을 줍다
보호받는 보호자
통역이라는 짐
또 다른 시작
그곳에 코다가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부서지지 않기 위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보이는 언어, 수어
침묵의 세계를
읽어내는 _ 이길보라
코다라는 언어를 갖다
시선들
우리 부모님은 농인이고 우리는 그게 좋아
장애인의 자녀 대 코다
같음과 다름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들
코다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침묵의 세계를 읽어내는
나는 지워진 이들의
유물이자 흔적입니다 _ 황지성
들을 수 없는 몸, 걸을 수 없는 몸
수치심, 열등감, 그리고 해방감
완전한 이방인
〈도가니〉의 법정에서
흩어진 파편을 모아, 잃어버린 흔적을 모아
수많은 차이가 엮여 우리가 된다
어떤 의존, 어떤 돌봄
돌아가야 할 집
깨닫게 된 것들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사이의 세계에서
완전한 ‘나’ _ 수경 이삭슨
조각보 같은 나의 삶
집으로 가는 길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에필로그 _ 여전히 우리는 코다입니다
출처: https://gyoyangin.tistory.com/entry/우리는-코다입니다-책-소개 [교양인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