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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나라, 핀란드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강원도수어문화원
  • 이메일 : kwdeaf@daum.net
  • 작성일 : 19-12-24 10:01
  • 조회 : 1,321회

본문

출처 https://bit.ly/35RGBZ1


 


 

 

다양성의 나라, 핀란드

고요 속의 대화

 

 

newsdaybox_top.gif[370호] 2019년 12월 23일 (월) 10:52:03노선영/작가, 청각장애인 btn_sendmail.gifsouldea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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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16년, 필자는 작가의 나라 아일랜드에 유학 중이었습니다. 청각장애인(농인)으로 타지에서 작가 공부를 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배움에는 길이 없다고 유럽 몇 군데 도시와 러시아 몇 군데를 방문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틈틈이 저렴한 티켓이 나오면 곧바로 가방을 들쳐메고 훌쩍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핀란드’ 라는 나라는 평생 잊지 못할 나라였습니다.

처음 핀란드를 갔을 때가 기억납니다. 당시 저는 스웨덴에서 핀란드로 넘어가려면 숙박비까지 절약할 수 있는 대형선이 가장 좋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예약하고 선착지에 도착했는데, 배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심지어 영화 ‘타이타닉’ 속의 배보다 더 컸습니다. 아쉽게도 돈이 없어 3등석에 머물렀는데, 탈출할 수 있는 창문도 없는 말 그대로 컨테이너 공간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영화를 수십 번 본 기억 때문인지 배가 움직일 때마다 숨이 턱 막히고 침몰할 것 같은 공포감이 들었습니다.

공포감을 억누르기 위해 간이 침대에 누워 마인드 컨트롤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별을 세며 배움의 희망만을 생각했습니다. 핀란드는 어떤 나라일까? 책으로만 봤던 나라였지만, 직접 볼 생각에 잔뜩 기대에 차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정말 배움 앞에 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밤새 해협을 건너 도착한, 헬싱키의 첫 인상은 매우 소박하고 작은 나라였습니다. 3박 4일 동안 헬싱키를 여행하면서, 운이 좋게도 공공 방송국인 ‘Yle’ 본사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헬싱키 도심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Yle 본사까지 트램을 타고 도착했습니다. Yle 방송국의 규모는 신촌의 한 대학교 캠퍼스처럼 건물이 곳곳에 퍼져 있었습니다.

 

핀란드의 자랑, Yle 방송국

핀란드는 한국의 농인 수보다 매우 적음에도 불구하고, 20년 전부터 수어를 언어로 인정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핀란드의 농인들은 정보 접근권을 우리나라보다 확실히 보장받고 있습니다. Yle 방송국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Yle 방송국이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스웨덴어 뿐만 아니라 핀란드어, 영어, 러시아어, 루마니어어, 라틴어, 수어까지 제공하는 세계 유일의 방송 회사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관의 다양한 포용성을 품고 있습니다. 즐겁게 하고, 만지고, 알리고, 경험을 제공하고, 토론을 하며 사람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핀란드의 다원적 이미지를 창출하여 민주주의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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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le 방송국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정확한 뉴스 보도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

 

 

한국의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뉴스를 보면, 비장애인 아나운서가 뉴스를 전달하고, 옆에 작은 원형 안에 수어로 통역하는 방식입니다. 예전에는 원형 속의 수어가 잘 보이지 않아서 불편함을 겪었지만, 요즘은 스마트 TV 등등 기술이 좋아져서 수어 통역 화면을 크게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좋았습니다.

하지만, 핀란드의 Yle 방송국은 차별화가 있습니다. 아예 농인 전문 아나운서를 따로 두고, 농인이 직접 뉴스를 전달하는 시스템이 갖춰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스튜디오는 수준급의 방송 장비로 채워져 있었는데, 비장애인 스튜디오 못지않은 시설이었습니다. 핀란드의 농인 아나운서는 남성, 여성 2명과 비상근무 대기조 아나운서 1명 포함 총 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농인 여성 아나운서도 Yle 방송국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다고 하니,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한국의 일례로 보면 몇 년 전, KBS 시각장애인 앵커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계약직’ 이라는 게 아쉬움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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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인 전문 아나운서가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인정해야 할 ‘다양성’

이렇게 훈련이 잘 되어있는 전문 농인 아나운서를 두고, 스튜디오까지 비장애인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시설로 갖춰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Yle 방송국은 말합니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인이 한국의 뉴스를 전달하면 그만큼 전달력과 공감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뉴스는 그 나라의 원어민이 전달해야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농인 전용 스튜디오는 놀랍게도 개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농인 맞춤형 시스템을 통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합니다. 예를 들어, 수어의 특성상 움직임이 많기 때문에 이동형 레일과 손이 잘 보이기 위한 조명까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크립트 기계 옆에 수어통역사의 수어를 보며 통역할 수 있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농인 아나운서들은 비장애인과 같은 곳에서 전문 메이크업도 받고 월급도 비장애인 아나운서와 동등한 대우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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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어가 잘 보여서, 전달력이 훨씬 높다.

 

 

Yle 방송국에서 획일화된 방송 시스템보다는,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연구하여 오픈 마인드로 발전하고 있는 열정적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미디어와 방송의 힘은 막강하고, 국민을 움직이게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편파적인 뉴스 전달은 위험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Yle 방송국은 많은 고민을 하고, 만나고,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 핀란드가 왜 복지국가인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투어를 마치고 나오면서 농인 아나운서에게 놀라운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Yle 방송국에 북한의 농인 관계자들이 저보다 1주일 먼저 와서 투어까지 마쳤다고 합니다. 그가 제게 국제수어로 나지막이 속삭이며 응원했습니다. ‘북한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농인 아나운서가 배출될 수 있다면 아시아에서 처음이 되지 않을까요?’라고 말입니다. 대한민국에도 핀란드처럼 다양성을 포용하고, 새로운 비상을 꿈꿀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바랍니다. 저 역시 그 날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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