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보편적 수어교육'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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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강원도수어문화원
- 이메일 : kwdeaf@daum.net
- 작성일 : 20-01-2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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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0.01.29 09:30
수어교육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한 장애인단체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철환 활동가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내가 한국수어(수어, 手語)를 할 수 있어서 좋은 게 무언지 아니? 공갈빵 가게 아저씨한테 ‘두 개 주세요. 얼마예요? 아, 한 개에 1,500원이예요? 감사합니다.’하고 말할 수 있다는 거야” 한 시청각중복장애인(시청각장애인)이 학교를 다니는 그의 시각장애인 친구에게 한 말이다.
그의 친구는 한 예술관련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 근처에서 청각장애인이 공갈빵을 구워 팔고 있었다. 친구는 학교 앞을 오갈 때마다 풍기는 구수한 냄새에 공갈빵을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듣지 못하는 빵가게 아저씨와 보지 못하는 자신과의 대화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학교를 오가며 공갈빵 파는 가게 앞에서 서성대기를 무려 7번, 결국 공갈빵 사먹는 것을 포기했다.
이러한 시각장애인 친구에게 수어를 배운 시청각장애인이 공갈빵을 사먹었다며 자랑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했다. “네가 나보다 영어 발음도 좋고 듣기도 훨씬 잘 하지만 한국 땅에서는 영어보다는 수어야. 수어를 못하면 넌 학교 졸업할 때까지 공갈빵 못 먹어. 하하하...”
우리나라에서 영어교육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교육을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유아시기 영어 교육은 더하다. 어릴수록 영어를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오래 전 조사이지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2014)에 의하면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유아기에 영어를 가르치는 비율은 35.3%이라 한다. 2000년대 초에 비하여 10배 이상 늘어난 수치라 한다. 이를 반영하듯 영어교육을 하는 유치원도 조사대상 유치원의 72.7%에 달했다고 한다.
유아기의 영어교육만 그런 것이 아니다. 현재 영어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5조원에 달할 정도로 학령기와 성인에 이르기까지 영어교육은 한번은 거쳐야할 관문처럼 되어버렸다.
한술 더 떠 한 때 영어를 한국의 공용어로 지정하자는 주장도 나온 적이 있다. 1998년 소설가 복거일이 쓴 책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가 계기가 되었는데, 당시 영어공용어 지정에 대한 찬반논쟁이 뜨거웠었다. 그러한 분위기를 타고 지난 2001년 당시 민주당도 '영어를 제주도의 제2공용어로 지정하겠다'는 약속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영어에 대해 지대한 관심에 비하여 수어가 우리의 공용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한국수화언어법(한국수어법)에서 ‘수어는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Deaf)의 고유한 언어이며, 대한민국 농인의 공용어’라고 하고 있다. 즉, 수어가 대한민국 일원인 농인의 공용어이므로 대한민국의 공용어가 되는 샘인데도 말이다.
더 나아가 정부의 영어교육에 대한 정책은 머리를 맞대면서도 수어에 대한 교육은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이는 일반학교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일반아동에 대한 수어교육은 안중에도 없다. 심지어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영어는 가르치면서 수어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도 있다.
한국수어법 제정운동을 할 당시(2012-2015) ‘장애인정보문화누리’ 등 장애인단체에서 수어를 제2외국어처럼 일반교육에 도입하자는 운동이 있었다. 초등학교의 방과후 교육으로, 중등학교에서는 제2외국어처럼 자율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하라는 요구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선택과목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열망과는 다르게 이러한 운동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당시 교육부에서 반대가 심했고, 정치권에서도 이해를 잘 하지 못했다.
세계화에 맞추어 영어의 중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언어는 소통의 수단을 넘어선다. 언어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잇는 끈이며, 문화 동질성을 이루는 요소이다. 그리고 우리와 이웃하는 농인들의 언어인 수어 또한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한 요소이고 동질성의 한 부분이다. 보편적인 수어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대화가 통하지 않아 공갈빵을 사먹지 못했던 시각장애인, 수어를 가르치지 않는 농학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어서 좌절하는 농인들, 이방인처럼 밀려나는 농인들, 이들 앞에서 우리는 돌아보아야 한다. 영어 열풍에만 매몰되지 말고 농인들과 공존할 수 있도록 특수교육은 물론 일반교육에서 수어교육을 도입하는 문제를 말이다. 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