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 배우는 만화> 평범한 청인 핑크복어의 명랑 수어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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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강원도수어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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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1-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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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 배우는 만화> 평범한 청인 핑크복어의 명랑 수어 도전기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청인 핑크복어. 학창 시절에 청각장애를 가진 친구와 제대로 대화하지 못한 아쉬움을 십 년 넘게 품고 있다가 드디어 수어를 배우기로 한다. 봉사활동이니 목적의식이니 좋은 일, 대단한 일 따위의 말, 수어를 배운다고 할 때마다 으레 따라붙는 주변의 반응에 “그냥”이라고 답하며, 질문으로 가득한 세계에 발을 들인다.
『수화 배우는 만화』는 ‘한 권으로 수어 정복’ 같은 학습서도, 대단한 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교양서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개인이 처음으로 수어를 배우며 겪는 재미와 어려움, 좌절감과 성취감에 대해 솔직하고 유쾌하게 그린 자전적 그림일기다. 작가는 수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가진 농인, 청인 들과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장애’에 대한 주변의 인식과 태도에 주목하고 자기 안의 편견들을 깨달아 간다. 그렇게 배울수록 커지는 고민들과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들도 조심스럽게 털어놓는다.
코다(Children Of Deaf Adult) 영화감독 이길보라의 추천사를 실었으며,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본문 감수를 진행했다. 『수화 배우는 만화』는 연재 당시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본문에서는 의도한 장면 외에 모두 공식 명칭인 ‘수어’로 표기했다.
생생하고 자유로운 언어의 세계와 조우하다
수어는 단순히 음성언어나 문자언어를 대신하는 비전문적인 수신호가 아니다. 수어는 오랫동안 축적된 농인의 삶과 문화에 기반을 둔 농사회의 언어다. 문자언어의 어휘와 문법에 끼워 맞춰 생각하면 표현이 한정적이고 엄밀하지 않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국제학술대회를 온전히 이끌 정도로 전문적이며 손동작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 몸짓(제스처)까지 표현 수단과 방식, 관용적인 활용 영역이 방대하다. ‘소리 없는 말의 세계’는 고요한 침묵의 세계가 아니라, 소리와 글자가 아닌 모든 것으로 이야기하는 세계다. 그 자유롭고 생생한 세계에서는 그간 음성과 문자에만 의존해 온 주인공이 오히려 말을 잃은 사람 같다. 겨우 손가락 세 개를 한꺼번에 펴다가 쥐가 나고 안 쓰던 얼굴 근육은 어색하게 일그러지고 뻣뻣하게 굳은 몸은 고장 난 로봇처럼 덜그럭거린다. 한국어 문법에 맞춰진 머리로 수어의 고유한 문법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크고 작은 고비와 수많은 질문 속에서 수어를 배우는 주인공의 따라가다 보면, 수어가 더없이 독립적이고 고유한 언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보인다. 달라서 어렵지만 그만큼 알고 싶어 욕심나는 세계. 그저 배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그 세계에 발을 들인 주인공의 좌충우돌 도전기는 수어에 전혀 관심이 없던 독자들도 읽고 쓰기나 듣고 말하기가 아닌 다른 방식의 소통에 대해, 새로운 언어의 세계를 만나고 배우는 즐거움에 대해 부담 없이 생각해 보게끔 한다.
'청인'의 입장에서 '농인'의 세계를 엿보다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반영한다. 요컨대 언어에는 그 사회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따라서 농인과 농인 사회를 떼어 놓고는 수어를 온전히 배우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주인공은 수어를 배우며 난생처음 자신을 ‘청인’이라고 소개하는 세계를 만난다. 수어만큼이나 독립적이고 고유한 농사회의 문턱에서 그곳을 슬쩍 엿보는 것만으로도 이방인이 된 기분을 절실히 느낀다. 대화하는 방식은 물론 ‘당연함’의 기준도 다르다. 오랫동안 고민하다 질문이 알고 보면 별것 아니었다거나 그게 왜 궁금한 것인지 농인 선생님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영상으로 수어를 독학하려다 “소리가 없어서” 도저히 공부할 수 없다고 불평하는 자기 모습을 보며, 소리가 당연한 청인 중심의 사회에서 ‘농인’으로서 어려움을 호소해 왔을 사람들을 떠올린다. “수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무턱대고 농인과 청인이 같다고 생각했지만, 현재는 ‘다름’을 받아들이고 알아 가는” 중이라고 주인공은 말한다.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이 장애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아는 틀 안에서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더 고민할 것도, 궁금할 것도 없으니 거기서 끝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배움은 시작된다. 낯선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일 때 시행착오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작가는 수어를 배우고 수어 만화를 연재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고민과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청인으로서 가지는 평범한 의문,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이 농인에게 무례하고 차별적인 언사일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자신의 무지함이 상대방에게 실례가 될 수 있음을 항상 인지하고 먼저 사과를 드린 뒤에 질문하는 습관이 생겼을 정도다. 작가의 말대로 수어를 배우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진중하고 성실하게 배우고 이해하려는 태도는 칭찬할 만하다. 상당히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만화이지만 페이지마다 작가의 조심스러움과 사려 깊음이 묻어난다.
『수화 배우는 만화』는 본격적으로 ‘장애’에 대해 다루는 책이 아니지만,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하고 고민했던 문제들을 솔직하고 친근하게 털어놓는다. 민감하고 어렵고 무거운 주제니까 함부로 입에 올리면 안 된다는 부담감과 자기 검열이 그간 가장 구체적인 생활의 일부인 ‘장애’를 일상과 동떨어진 미지의 것으로 만들어 온 것은 아닐까. 이 책이 우리의 일상과 연결하지 못했던 또 다른 소통의 형태, 여러 가지 삶의 형태에 관해 쉽고 재미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책들이 더 많이 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