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역사』와 함께하는 미국 탐방기③

갈로뎃대학교의 복도. 두 사람이 걸으며 수어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복도의 폭이 넓어야 한다. ⓒ김승섭갈로뎃대학교의 복도. 두 사람이 걸으며 수어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복도의 폭이 넓어야 한다. ⓒ김승섭

갈로뎃은 농인 대학교다. 갈로뎃의 수업은 수어로 이루어지기에, 강의실은 모든 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교수의 손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복도도 일반적인 대학 건물보다 폭이 훨씬 넓다. 두 사람이 함께 걸으며 구어가 아닌 수어로 대화하기 위해서는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복도나 강의실의 벽 색깔은 다양한 피부색과 구별되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는데, 그렇지 않으면 멀리서 수어로 이야기하는 상대방과 대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변화는 1864년 미국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아 설립된 이래 백 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캠퍼스 곳곳에 축적된 것이다. 그러나 수어로 강의실에서 수업과 토론을 하고 캠퍼스에서 생활을 한다고 해서 갈로뎃을 농인 대학교라고 부를 수 있을까?

1988년 갈로뎃의 학생들은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대학교의 문을 걸어 잠그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1주일간 캠퍼스를 점거한다. 학생들의 요구 사항은 명료했다. “지금 당장 농인 총장(Deaf President Now, DPN)”

학생들은 124년 동안 매번 청인만이 총장으로 선출됐던 역사와 단절하고자 했다. 그렇게 시작된 투쟁은 장애를 수치와 낙인이 아닌 하나의 온전한 정체성과 자부심으로 받아들이는 장애 자부심(Disability Pride)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모든 일은 1988년 3월 갈로뎃의 이사회가 차기 총장을 선출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총장 후보 3명 중 엘리자베스 진저(Elizabeth Zinser)는 청인이었고, 나머지 두 후보인 킹 조던(I. King Jordan)과 하비 코슨(Harvey Corson)은 농인이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박사 학위를 소지한 농인의 숫자가 100명이 넘은 상황이었고, 여러 교육기관에서 농인들은 고위직 행정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갈로뎃의 사람들은 마침내 농인 총장이 탄생할 때가 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1988년 3월 6일 이사회는 청인인 진저를 총장으로 선택했다. 본래 이사회는 총장 선임 발표를 체육관에서 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공식적인 발표를 피했다. 새로운 총장이 누구인지를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하는 것으로 그 과정을 대신했다. 유인물에는 ‘갈로뎃의 첫 여성 총장’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1998년 3월 갈로뎃에서 ‘지금 당장 농인 총장’를 외치며 점거 농성 중인 학생들. ⓒCourtesy of Gallaudet University Library Deaf Collections and Archives1998년 3월 갈로뎃에서 ‘지금 당장 농인 총장’를 외치며 점거 농성 중인 학생들. ⓒCourtesy of Gallaudet University Library Deaf Collections and Archives

농인 총장을 고대하며 체육관에서 기다리던 학생들은 거리로 나가 연좌 투쟁을 시작했다. 그 투쟁에 함께 하고 있던 전국농인연합의 회장 개리 올슨(Gary W. Olsen)이 말했다. “우리가 이 추운 날씨에 거리에 앉아있는 동안, 이사회는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와인을 마시고 스테이크를 먹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호텔로 행진을 시작했다. 그들은 행진하며 이사회 회장이었던 제인 스필만(Jane Spillman)의 퇴임을 요구했다. 미국수어로 ‘스필만 아웃(Spillman out)’이라는 구호를 반복했다. 시위대는 스필만의 이름을 ‘스필(Spill, 엎지르다)’과 ‘맨(Man, 사람)’을 조합한 수어로 표현하며 거리를 함께 걸었다. 그리고 같은 날 밤, 학생들은 바리케이트를 치고 갈로뎃대학교의 정문을 걸어 잠근 채 농성을 시작한다. 학생들의 요구 사항은 4가지였다.

1. 엘리자베스 진저는 사임하고, 농인 총장을 임명하라.
2. 제인 스필만은 이사회 회장에서 사임하라.
3. 이사회 멤버의 51%는 농인이어야 한다.
4. 이 투쟁에 관여한 직원과 학생에 대한 보복이 일체 없어야 한다.

그로부터 7일 뒤인 3월 13일, 학교는 4가지 요구 사항을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고 학생들은 점거 농성을 풀었다. 1988년 총장으로 임명된 킹 조던(I. King Jordan)은 2006년까지 그 직무를 수행한다. 그 이후 갈로뎃의 총장은 로버트 다빌라(Robert R. Davila 2007~2009), 앨런 허위츠(T. Alan Hurwitz, 2010~2015)를 거쳐 로베르타 코르다노(Roberta J. Cordano, 2016~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농인이다.

미국 국회의사당 건물에서 ‘지금 당장 농인 총장’을 임명하라고 요구하는 갈로뎃의 학생들. ⓒCourtesy of Gallaudet University Library Deaf Collections and Archives미국 국회의사당 건물에서 ‘지금 당장 농인 총장’을 임명하라고 요구하는 갈로뎃의 학생들. ⓒCourtesy of Gallaudet University Library Deaf Collections and Archives

『장애의 역사』에서 킴 닐슨은 이 투쟁의 역사적 맥락을 다음과 같이 간략히 서술한다.

장애인들이 점차 스스로의 삶을 직접 결정하고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과 자신들이 살고 일하고 배우는 시설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주장하면서 장애 운동과 공동체 그리고 그 역량은 점차 커져갔다. (311쪽)

이 투쟁의 승리는 단순히 갈로뎃대학교의 총장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았다. 농인 대학교를 농인 총장이 운영해야 한다는 갈로뎃 학생들의 주장은 전국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며 장애인권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2년 뒤 「미국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y Act)」을 제정하는 데 있어 또 하나의 동력이 되었다. 또한 갈로뎃 투쟁은 장애인을 돌봄과 동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맞서, 장애를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며 자부심으로 간직하는 이들이 대중 앞에 본격적으로 드러난 계기였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갈로뎃의 총장이었던 앨런 허위츠는 한 인터뷰에서 ‘지금 당장 농인 총장’ 투쟁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 투쟁은 모든 종류의 문을 열었다(DPN has opened all sorts of doors).”


* 참고 자료 
조지프 P. 샤피로, 『동정은 싫다』, 윤삼호 옮김, 한국DPI 출판부, 1994.
David M. Perry, “How ‘Deaf President Now’ Changed America”, Pacific Standard, April 11, 2018.
Nick Anderson, “Gallaudet marks ‘Deaf President Now’”, The Washington Post,     February 7, 2013

필자 소개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 『장애의 역사』 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