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에 가로막힌 1년…농인은 안녕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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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강원도수어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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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1-04-0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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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에 가로막힌 1년…농인은 안녕하지 못합니다
[마스크에 가린 삶, 청각장애인 동행①] 농인 조주연씨
비대면과 마스크 착용이 ‘뉴노멀’이 되면서 세상과 단절된 사람들이 있다. 전국 30만명의 청각장애인이다. 보청기·인공와우 등 청력 보조장치, 상대의 입모양을 읽는 구화술, 수어, 필담 등 많은 언어를 조합해 소통하는 이들에게 코로나 뉴노멀은 거대한 소통의 장벽이 됐다. 팬데믹 1년, 청각장애인들의 삶은 안녕할까. 국민일보는 최근 총 2회에 걸쳐 중‧경증 청각장애인의 일상을 동행 취재했다.

지난달 28일 농인 조주영(26)씨는 약속장소를 찾지 못하는 친구 길 안내를 위해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왼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자신을 비추고, 남은 한 손으로 수어를 주고받는 모습이 능숙했다. 잠시 뒤 나타난 친구는 수어통역사 채주연(26)씨였다. 큼직한 수어 동작과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는 그들에게서 소리 없는 반가움이 느껴졌다.
중증 청각장애인 조씨와 비장애인 채씨의 우정은 지난 2015년 학내 채플(실내 예배)에서 시작됐다. 7년 전 그날, 수백 명이 정면을 향해 찬송하는 가운데 강단을 등진 오직 한 사람이 있었다. 조씨에게 예배 내용을 전달하는 교내 수어통역사였다. 채씨는 “그때부터 수어에 관심이 생겼다. 수어를 배워 농인과 소통하고 싶어 용기를 내 주영이에게 다가갔다”고 말했다. 그날 인연으로 채씨는 3년여간의 학습과 통역 봉사경험을 쌓아 정식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얻었다.
농인의 대화는 복합적이다. 인공와우로 전해지는 부정확한 전기음, 상대의 입 모양을 읽는 구화술, 수어, 종이에 적은 글씨 등 많은 언어를 조합해 의미에 다가간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비대면, 마스크가 일상이 되면서 농인들은 소통에 필요한 많은 조각을 잃었다. 팬데믹 속 농인들의 삶은 안녕할까.
국민일보는 이날 오후 서울 성신여대 인근 카페에서 만나 조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화 대부분은 채씨의 수어통역으로 진행됐다.

비대면으로 소비는 편하지만…마스크로 가로막힌 소통
조씨는 카페에서 큰 어려움 없이 음료를 고르고 결제했다. 와우의 보조 없이도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종업원에게 주문을 전달했다. 마스크 착용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손님이 많다 보니 점원도 응대에 익숙했다.

모바일 주문 및 배송이 활발해지면서 코로나 이후 농인의 소비행위는 편해진 측면도 있다. 조씨는 “특히 테이크아웃 음료점, 마트의 이용이 간편해졌다”고 했다. 일례로 대형마트를 방문하면 비닐봉지를 구매할 건지, 현금영수증 등록이 필요한지, 영수증은 인쇄물로 받을 것인지 등 질문이 따르다 보니 농인이 이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모바일 쇼핑이 확대돼 농인도 어디서든 원격 장보기가 가능해졌다.
문제는 일상적 소통에 있었다. 농인은 상대 입술을 읽는 구화술로 대화의 40%가량을 이해한다. 수어, 몸짓, 휴대전화 메모를 활용한 필담 등과 더불어 구화술도 꼭 필요한 소통 수단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사는 팬데믹 시대. 농인인 조씨는 소통의 가장 중요한 채널 하나 잃은 셈이 됐다. 수어를 모르는 비장애인이 불투명마스크를 착용한다면 농인과의 소통은 큰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요즘 조씨가 청인과 나누는 일상 소통은 주로 휴대전화 혹은 메모지에 글을 적는 필담으로 이뤄진다.
기자는 불투명마스크를 착용한 뒤 조씨와 수첩과 펜을 주고받으며 20분쯤 필담을 나누었다. 한 글자씩 또박또박 뜻을 전할 수 있었지만, 투명마스크를 착용했을 때보다 그 속도는 꽤 느렸다.
‘평소 즐겨보는 동영상 콘텐츠가 있나요?’
‘많은데 그중에 OO마트라는 개그 유튜브 채널이 재밌어요.’

모든 대화가 자막으로 제공돼 농인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조씨가 자막이 제공되는 영상만 보는 건 아니다. 인식한 음성을 문자로 변환하는 자막 생성기, 자동자막 기능 등을 활용해 무자막 영상물도 즐겨 챙겨본다. 그는 “나만이 아니라 많은 농인들이 자막이나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는 인기 드라마나 예능, 뉴스 같은 걸 본다. 만나면 ‘어제 그거 봤니’ 서로 물어볼 정도”라며 “하지만 자막 생성기의 정확도가 크게 떨어져 불편함이 큰 것도 사실이다. 시중의 모든 콘텐츠에 수어통역사와 자막을 배치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수어통역사 채씨는 비대면 교육 및 행사장에서 수어통역을 하면서 열악한 현실을 체감한다고 말한다. 수어는 도중에 흐름의 끊김 없이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데, 수어를 송출하는 기기 불량으로 농인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채씨는 “특히 대학 화상 수업 등에서 수어 영상이 멈춘다거나 느려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면서 “수어를 전달하는 경우에는 방송 장비를 더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구직 현장서 일상 된 차별…“개인문제 아냐, 적극 알려야”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2020 장애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국 장애인은 262만여명으로 파악된다. 그 가운데 13%인 약 30만명은 청각장애인이다. 그 숫자가 적지 않음에도 우리 사회는 농인을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조씨가 경험한 세상에는 아직도 행정 편의적인 장애 등급제, 구직 현장 내 차별이 만연했다. 이하 조씨와의 일문일답.
-장애 판정을 받게 된 계기는
“2살 때 앓은 열병 후유증으로 청각장애 중증, 당시 기준으로는 청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인공와우의 전기 신호음을 제외하면 소리 경험이 없다. 서울애화학교에서 특수교육을 받았다. 고등학생 때 본격적으로 수어를 배웠는데 대개 3개월이면 익힌다. 인공와우의 경우 스스로 세상을 더 잘 알아가기 위해 보조수단으로서 필요성을 느껴 왼쪽은 초등학교 4학년, 오른쪽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이식받았다. 와우를 장착해도 청력은 온전하지 않다. 일대일 소통은 가능하지만 강연이나 다수의 대화는 이해하기 힘들다. 장애등급제는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과거 1~6급까지 나누다 지금은 중증, 경증으로만 나누지만 그 방식이야 어떻든 모든 장애인은 등급제에 분노한다.”
-장애등급제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민주사회에서 사람을 급으로 나누는 것은 부당하다. 또한 같은 중증 장애인이라도 장애 내용과 필요한 보조 수단이 사람마다 다르다. 등급을 나누지 말고 장애 여부와 원하는 보조 내용을 담는 것이 낫다고 본다. 낙인찍을 뿐이라며 장애인 등록을 거부하는 지인도 많다.”
-현재 직업을 소개하자면
“다양한 농아인 직업 교육기관의 영상기기를 정비한다. 또 최근에는 농인 어르신들의 스마트기기 교육을 담당한다. 어르신 대부분은 젊을 때는 청인이었다. 나이가 들고 사고를 당하면서 청력을 상실하신 분들이 많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가르지 말고 똑같은 사람으로 대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구직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없는지
“저는 아니지만 주변에 안타까운 사례가 많다. 청각장애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취업 현장에서 차별받는 주변 농인들이 매우 많다. 직무 능력이 뛰어남에도 회사 면접에서 ‘동료나 고객과 소통이 안 되는데 어떻게 일하냐’는 질문을 받고 탈락했다는 지인도 있다. 청각장애 하나만으로 개인 전체를 부정한 것이다. 대부분 농인은 자기 꿈을 접고 공장 단순직, 카페에서 일한다. 이런 경험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농인 선후배들이 취업 현장에서 겪은 차별이나 피해를 사회에 직접 알려야 한다고 본다.”
-미디어로 접하는 코로나19 방역, 지방선거 정보는 만족스러운가
“수어통역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어통역사 혹은 자막 둘 중 하나만 제공받으면 어려운 용어가 나올 경우 이해가 어렵다. 둘 중 고르라면 수어가 편하지만, 수어와 자막이 동시에 제공돼야 제대로 정보를 이해할 수 있다.”
-농인에 대한 오해 중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인공와우를 장착하면 청력을 완벽하게 회복한다고들 생각한다. 아니다. 물론 개인차는 있지만 와우를 통해 들리는 소리는 전기적 신호음이다. 이마저 잘 들리는 분도 있고 안 그런 분도 있다. 와우는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일 뿐이며, 입모양과 글자, 수어 등 다양한 소통방식을 동원해야 한다.”
이성훈 기자 노유림 인턴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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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5702010&code=61121111&cp=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