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높은 소리의 장벽"…라면 한 봉지 사기 힘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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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높은 소리의 장벽"…라면 한 봉지 사기 힘든 '이방인'
2023-02-11 07:13
청각 장애인들 "배려 늘었다지만…코로나19 속 일상 어려움 여전"
통역 서비스 등 지원 체계·농인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확대 촉구

온라인 비대면 서비스 (CG)
[연합뉴스TV 제공]
(춘천=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코로나19 이후 청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저희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해요. 앞으로는 시간과 장소의 구애 없이 수어 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유니버설 디자인도 확대됐으면 해요."
지난 10일 강원 춘천시수어통역센터에서 만난 농인 박영철(58)씨는 수어 통역사 민경준(46)씨의 목소리를 통해 여전히 자신이 '청인 사회의 이방인'으로 느껴진다고 털어놨다.소리 없는 세계에 갇힌 청각 장애인들에게 코로나19가 가져온 '비대면 문화'는 커다란 산이었다.
입 모양이 보이는 '투명 마스크'(립뷰 마스크)가 출시되고 수어 통역 서비스가 늘어나는 등 사회적 배려와 관심은 증가했지만, 이들이 느끼는 장애의 벽은 여전히 견고했다.
사람들과 대면해 의사를 표현하는 게 익숙한 청각 장애인들로서는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기간에 라면 하나를 사는 것조차 힘겨웠다.
'온라인으로 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수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농인 중에 한국어를 청인만큼 능숙하게 읽고 쓰는 이는 드물다.
수어를 쓰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펜과 종이, 휴대전화 등을 활용한 필담(글로 써서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하기도 하지만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청력의 상실은 단순히 '듣지 못함'을 넘어 글자를 이해함에도 큰 장애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신체적으로 건강하다고 해서, 소리의 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의 고통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21년째 수어 통역사로 일하는 민씨는 "한국어를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분들의 경우에는 이름 석 자를 읽고 쓰는 정도만 할 줄 안다"며 "배달앱, 키오스크, 무인매장 등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지인 등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목소리와 입 모양, 표정으로 말을 이해하는 구화인 이은경(47)씨도 드라이브 스루 등 비대면 음성 서비스 이용이 쉽지 않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성인이 된 이후 청력을 점점 잃어간 이씨는 귓속에 달팽이관의 기능을 대신하는 전기적 장치인 '인공와우'를 달고 있어 소리를 미세하게나마 들을 수 있지만, 눈으로 상대의 입술 모양을 포착하는 게 여전히 중요하다.
"병원에서 제 이름을 부르거나 안내하는 말을 듣지 못하고, 순서를 놓친 적도 많아요. 지난해 3월 코로나에 걸렸을 때는 남편이 전화로 의료진 등과 전화 상담을 해주기도 했어요. 음성만으로는 여전히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워요."
입 모양을 가리는 마스크, 휴대전화 필담을 어렵게 하는 일회용 방역 장갑, 음성을 문자로 변환하는 데 제대로 된 작동을 가로막던 방역용 가림막이, 주류가 된 비대면 문화까지….
강원 지역에서는 코로나를 거치며 행정 정보 수어 알림, 병원 수어 통역 서비스 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청각장애인들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고 토로한다.
박씨 등은 "춘천시만 하더라도 4명의 상근 수어 통역사가 센터에 등록된 회원 92명을 비롯해 미등록 장애인들에게도 통역 서비스를 폭넓게 제공하고 있어 청각 장애인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시간, 장소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수어 통역사 인력 확보와 함께 더 다양한 지원 체계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들은 또 성별, 나이, 국적, 장애의 유무 등과 상관없이 모든 사용자를 고려한 디자인을 의미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청각 장애인을 배려한 형태로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유니버설 디자인은 사용, 공간, 크기 등 물리적 장벽을 허문 형태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언어적 장벽까지 허물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씨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곤 하지만 피부로 와 닿는 게 별로 없다"며 "일상의 언어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정책적·사회적 노력이 뒷받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애인 시민단체도 "팬데믹 이후 급격히 확산하는 각종 비대면 시스템은 반드시 장애인의 접근권을 고려해야 한다"며 "비대면·무인 시스템 속에서 이뤄지는 차별 등에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