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⑪장애인이 살기 좋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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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강원도수어문화원
- 이메일 : kwdeaf@daum.net
- 작성일 : 23-02-2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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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⑪장애인이 살기 좋은 나라
우리 모두 장애인입니다. 차별국가에서 장애인 친화 국가로
수업에 들어가면 눈에 띄는 학생이 있다. 맨 앞에 앉아 휠체어를 타고 있는 학생이다. 그 학생 옆에는 수업 노트를 적는 보조 선생님이 함께 앉아 있다. 수업내용을 꼼꼼히 적어 가며 수화로 소통한다.
50분 수업 후 잠시 휴식시간 후 돌아오면 장애인 학생 옆에서는 다른 수화 선생님이 앉아 있다. 첫 시간 수화 선생님은 강도가 높은 업무의 성격 상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임무를 교대한 것이다. 청각장애와 신체장애를 동시에 갖고 있는 학생을 돕기 위해 두 명의 보조 선생님이 배치된다.
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는 시험 때 특별히 더 배려한다. 난독증이 있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발급한 증명서를 교수에게 사전에 제출하면 시험시간은 최대 2시간 더 주어지고 종이 대신 컴퓨터로 답안지를 작성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시각 기능 저하 장애인이 수강할 때는 필기시험 대신 구두시험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세미나 과제 제출도 재량에 따라 1주일 정도의 시간을 더 부여해 준다. 장애인 학생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대학 행정처 차원에서 기능장애 학생 지원단이 따로 조직되어 있어 장애인 학생 들이 입학할 때 그 들의 권리와 학교의 지원에 대해 알려준다.
[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글싣는 순서
1. 글을 시작하며
2. 영국, 미국 그리고 스웨덴 3국의 숨겨진 비밀
3. 노조가 존중받는 사회, 스웨덴 노조의 대변신
4. 기업하기 좋은 나라, 사민당의 대변신
5. 만연했던 부패 어떻게 청산했나, 스웨덴 해법의 블랙박스
6. 특권을 걷어낸 정치, 국가경쟁력
7. 민주주의 건강상태는 누가 챙겨야 할까
8. 좌우파의 국가우선주의, 설득을 통한 상생의 정치
9. 정당 내 계파가 없는 이유
10. 성차별이 없는 사회
11. 장애인이 살기 좋은 나라
장애인 학생을 위한 지원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자기 힘으로 학업을 진행할 수 없는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장애인 교육 지원정책에 근거한다. 장애인 자녀를 둔 가정의 부모양육지원, 보조원 지원, 특수학교 지원, 보조장비 지원, 장애인 취업훈련 지원 등 총체적 프로그램의 일부다.
지금은 가장 앞서 가는 장애인 친화 국가 중 하나지만 50여년전까지만 해도 스웨덴은 장애인 차별 국가에 속했다. 1960년대까지 유럽에서는 우생학(Eugenics)이 지배하고 있었다. 스웨덴도 예외는 아니었다. 백인 중심 사회에서 우생학은 18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인종주의적 시각과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허버트 스펜서에 의해 정립된 적자생존론에 기반을 둔 학문적 체계로 신체적-정신적 결함을 질병으로 규정했다. 스웨덴은 1921년 국립우생학 연구소를 웁살라 대학에 설립해 유전적 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연구에 몰두했다. 유전적 질환은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제적 방법이 동원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1935년 장애인 강제불임법이 제정되었고, 이보다 더 강화된 개정법이 1941년 발효되어 1975년 폐지될 때까지 격리수용과 강제불임시술을 강요했다. 이 기간 동안 강제불임 시술의 희생자는 6만3000명에 달했다고 기록되고 있다
1757년에 발효된 교회법에 따라 간질병 환자와 정신질환자들에게 결혼을 금지 시켰다. 1920년 제정된 혼인법도 간질환자와 정신질환자들의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고, 1968년 허가제(교구장의 허락)로 잠시 바뀌었다가 1974년 완전 폐기 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노동 의욕 저하, 장기 실업, 알코올 중독 등으로 가난구제 수용소에서 생활하는 경제적 비독립자들에게는 1945년까지 투표권이 제한되었다.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1943)에서도 나태와 궁핍은 질병, 무지, 불결과 함께 5대 사회악으로 간주할 정도로 부정적 시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금치산자와 한정치산자로 분류된 발달장애인 등은 보호자와 함께 투표하도록 한 제한투표권은 1989년이 되어서야 폐지되었다. 인종차별적 사상을 확산시킨 우생학의 연구와 이에 근거한 비인도적인 정책은 장애인의 인권탄압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1970년대 중반까지 사용되어 온 셈이다. 이렇게 어두운 역사를 가진 스웨덴의 장애인 정책은 어떤 계기로 변화되기 시작되었을까?
장애인 위상의 대전환
신체적 조건과 생물학적 차이에 관계없이 백인 남성에 국한되었던 재산소유권, 기본권, 정치권이 점차 신체적 조건과 생물학적 차이에 관계없이 모든 성인과 구성원에 확장되기 시작한 데에는 1948년 UN인권선언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여전히 영미를 중심으로 백인 중심의 인권에 국한되는 상황에서 1966년 발효된 정치, 경제,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은 선진국 인권정책에 새로운 방향타를 제공해 주었다. 미국 존슨대통령 시절 흑인인권과 투표권에 대한 보장(1964)은 링컨에 의해서 시작된 흑인노예제도 폐지(1863) 이후 100년 만에 흑인의 인권과 참정권이 법제화 되었다. 이때부터 장애인의 인권 보장을 위한 논의가 스웨덴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우생학을 벗어 던지고 처음으로 시도한 장애인 정책은 1968년 제정된 돌봄법과 장애아동의 의무교육에서 출발했다. 이 전까지만 해도 경제적 능력이 있는 가정은 특수교사를 채용해 가정에서 교육을 시킬 수 있었지만, 재정능력이 없는 가정은 자녀에게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던 셈이다. 국가가 무상으로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장애아동들은 가정을 벗어날 수 있었다.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도 이때부터 빠르게 정착되기 시작했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준 계기가 된 이유다.
모든 장애인이 학교교육을 받아도 좌절하는 것은 직업에 대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훈련의 부재, 그리고 장애인을 채용하는 기업의 부재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 특화 사회기업인 삼할(Samhall)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삼할활동이 시작된 것은 1980년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애인은 같은 장애를 갖는 것이 아니라 장애의 종류가 다양하며, 같은 장애를 갖고 있더라도 정도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맞춤 직업훈련을 제공하지 않으면 교육은 큰 효과가 없었다. 설사 훈련을 통해 특정 직능기술을 습득했다고 하더라도 장애인을 채용하는 기업이 없었기 때문에 고용시장에서 스스로 직업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해 이 조직이 만들어졌다.
일반 직업교육원은 훈련생들이 반복 훈련으로 요구되는 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오르면 수료증을 받을 수 있지만, 장애인의 경우 개인 특성에 맞는 기술훈련이 적용되어야 하고, 맞춤 교육에 따라 얻은 기술과 능력에 맞는 직업을 매칭해 주어야 가능하다. 삼할은 다양한 장애인 단체와 사회단체, 그리고 사회기업들을 하나로 모아 조직화된 직업훈련, 직업소개, 기업이 한 조직으로 만들어진 경우다. 국영기업이기 때문에 예산은 국가에서 지원하지만, 전액을 지원하지는 않고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구조다. 조직과 운영은 기초 지방자치체에서 담당하고 다양한 워크숍을 통한 교육과 정보제공, 맞춤 직업훈련, 직업소개, 소규모 기업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장애인에 특화된 사회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다. 2023년 기준 2만493명을 직접 고용해 다양한 기업의 니즈에 따라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일반 기업들의 부품이나 완제품 납품을 위한 생산기업의 역할도 하는 협동조합 형식으로 운영된다. 현재 40여개 국가의 130개 조직과 국제적으로 연대한 활동과 노하우 제공, 개도국지원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모든 기초단체 단위로 활동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학교교육을 졸업한 후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삼할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직업훈련이나 대학교육 기간 동안 지원을 위해 19~29세 장애인의 경우 2만1230크로네(한화 약 250만원)의 월지원금을 취업준비, 학업 등을 위해 수행할 수 있도록 활동지원금(aktivitetsstöd, activity subsidy)을 지급한다. 이 제도는 고등하교 졸업을 마치고 다양한 이유로 잠시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할 때 타임아웃을 하고 언제든 다시 돌아와 교육과 직업훈련 등 지속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때 장애인들도 비장애인 학생들처럼 CSN 학업지원금(35%는 저리융자, 65%는 학업보조금)을 받을 수 있지만, 활동지원금을 받는 경우 학업보조금만 받을 수 있도록 자율적 선택권을 보장해 주고 있다. 20203년 기준 1만2052크로네(한화 약 145만원)의 학업지원금을 지원한다. 이 학업지원금은 개인적 사정으로 초, 중, 고등학교를 중단한 경우 다시 정규교육을 받기 원할 때도 사용할 수 있다. 성인의 경우 61세까지 학업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어 직업을 바꾸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직업훈련 교육을 받을 때도 사용할 수 있다. 65세까지 융자 부분은 상환을 해야 하기 때문에 51부터 61세까지는 차등지급제를 운영한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모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